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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반의 영화리뷰

신라의 달밤 (Kick the Moon, 2001) 사랑은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살게 해 주는 것이다

by notail86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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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
경주 수학여행! 십년전, 전설적인 고교 짱 최기동과 소심한 모범생 박영준은 경주지역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휘영청 달이 밝은 운명의 그날 밤, 두 사람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겪게 된다. 재회! 우연히 10년만에 경주에서 마주친 기동과 영준. 고교시절 ‘전설의 짱’ 최기동은 다혈질 체육선생이 되어 있고, 소심한 모범생 '왕따' 박영준은 엘리트 깡패가 되어 나타난다. 그 옛날의 전설적인 사건을 되새기며 반갑게 악수하는 그들의 양손에는 어느덧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문제의 그녀! 그녀는 홀연히 나타났다. 슬픈 눈으로 우는가 하면 어느덧 그 눈으로 웃음 짓는 민주란! 그녀가 깡패같지 않은 깡패와 선생같지 않은 선생의 사랑을 뒤로한 채 관심을 쏟는 남자는 철부지 남동생 민주섭. 주섭은 영준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하는 기동 학교의 소문난 문제아인데... 과연 깡패와 선생, 그들의 어떤 사랑법이 주란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평점
7.1 (2001.06.23 개봉)
감독
김상진
출연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이종수, 이원종, 성지루, 조상건, 이한갈, 유해진, 김학규, 김영준, 강성진, 김수로, 전수환, 김성겸, 장태성, 문혁, 김윤성, 김성준, 이정민, 김태환, 한성식, 이정학, 황재석, 김보선, 박정호, 김응수, 노수성, 이시은, 송치경, 김재원, 김희기, 김용운, 윤대경, 박준서, 구혜룡, 신승환, 서현기, 허기호, 이정주, 방정식, 김용태, 김상진, 김효열, 박희대, 양수영, 손명진, 장유정, 유일한, 김태훈

생(生)의 부침(浮沈)은 음양(陰陽)의 법칙(法則) 속 애욕(愛慾)의 결과이다

생에는 정답이 없다.

 얼마 전 올해 수능이 끝났다. 필자는 10년도 넘은 과거에 수능을 치렀다. 중학교 진학 후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의 잘못된 만남으로 수학에 대한 증오심과 교권에 대한 불만이 생겨, 흔히 말하는 '수포자'가 되었다. 하나를 포기하니 다른 건 더욱 쉬웠다. 여러 가정사도 보탬이 되어 항상 반에서 뒤로 1~3등 안에 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진로를 지지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을 원하셨다. 커서 보니 '사'짜 직업들은 대게 안정적으로, 한 직장에 오래 몸담을 수 있고 고소득이며, CS를 하지 않는 직업들이었지만, 그때는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잘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했다.

 공부는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왜 그러냐면 난 '100일의 기적'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를 지나며 위에 말했듯 항상 하위권이었던 나는, 수능 이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저냥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소망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2, 고3이 되면서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어디 누구랑 싸워서 이겼다더라, 누가 누구한테 돈을 뜯었다더라 하는, 소문만 무성하고 진실 여부는 확인이 안 된, 소위 일진들이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저렇게 살다가는 잘 풀려봐야 조폭 아니면 양아치로 살겠거니 싶었던 놈들이 이제 내 직장 상사가 되거나, 권력을 쥐고 내가 속한 사회를 쥐락펴락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와! 이번 생은 망했다!

 나의 아집과 고집으로, 100세 인생에서 인생의 1/5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이번 생을 운운하면서 망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반이기 때문에, 어떤 시작이냐가 나머지 반을 좌우한다. 그래서 안 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것이다.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는지, 모의고사 성적이 내신보다 잘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고 내신이 잘 안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남몰래 노력했다. 집에서는 타 지역의 대학교에 보내줄 여력이 없었다. 목표는 인서울.

 수능을 치른 뒤 모의 채점을 해본 결과, 역시는 역시인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되는 과목들은 100일의 벼락치기로는 커버가 불가능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100일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보신 분이다. 정말 고맙게도 1년 치 고시원비를 지원해 줄 테니,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이 없냐는 말씀을 해 주셨다. 정말 고마웠지만, 1년이 늦어지면 내 상사가 내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 능력을 활용한 차선책을 찾았다.

 지금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검색만 하면 내가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만, 그때는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도 모르는 정보였지만, 난 향후 몇 년 안에 전문대와 통폐합되는 대학교들을 찾았고, 성적에 맞추어 원서를 접수하였다.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으니, 예비였던 건 당연했다.

 그렇게 난 결국 인서울 대학교 졸업생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직종에서 종사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일진들이 공부를 해 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어도,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에 취직해 잘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심지어 해외로 나가 나름 잘 사는 친구도 있다. 오히려 대학교 때 만났던 대다수의 친구들은 점수에만 맞춰 학교에 왔기 때문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 제 살길 찾아 떠났다.

침언부어(沈言浮語)

 생에는 정답이 없다. 수능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기회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 좀 식상한 말일지는 몰라도 포기하지 마라. 너무 위만 바라보지 말고, 주변을 둘러봐라.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에 나가보자. 그리고서는 무작정 시장으로 가보자.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해 봐라. 용기 내어 말도 걸어보자. 그렇게 세계를 넓히는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해결 못하는 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이어 보면, 당장 가장 중요한 것들이 도출된다. 그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에너지의 방향성도 중요하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는 소비하지 마라. 생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어릴수록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에너지의 방향성만 잘 잡는다면, 당장은 변화가 잘 안보일지라도 몇 년이 지난 뒤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하지만, 하는 도중에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것은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것을 운동이라고 한다. 운동은 뇌과학과도 면밀한 관계가 있다.

 또,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은 돌고 돈다는 말이 왜 생겼냐면 진짜 그렇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상태는 몇 없다. 내가 아는 영원한 상태 한 가지는 죽음뿐이다. 죽음 앞에 그 어느 것도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스러우며, 억지스러운 것은 저항을 받게 된다. 한없이 가라앉는다면, 곧 떠오를 것이다. 반드시.

영화 리뷰

 드디어 영화 리뷰를 적는다. 신라의 달밤도 그런 인생을 보여준다. 강상고 24회 동기인 최기동은 고교 '짱'이었고, 박영준은 공부를 잘하지만 왕따가 된다.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박영준이 '신라의 달밤'을 부르는데, 야유를 받게 되자 최기동이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빼앗고서 '그대에게'를 부르며 서로의 인연이 교차한다. 패싸움 사건으로 인해 주동자 최기동은 대표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맞게 되며, 분노로 인해 공부를 잘하는 박영준이 되고자 하는 반면, 박영준은 공부는 잘하지만 싸움은 못해 패싸움에 끼지 못하고, 배신자 낙인이 찍혀 전교 왕따가 되어 돌아가는 버스에서 최기동이 되고자 마음먹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최기동은 체육 고사가, 박영준은 전국구 조폭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고교 짱은 체육 교사가, 똑똑했던 왕따는 전국구 조폭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 최기동에게 장기자랑 때 싸움을 걸었던 황덕섭은 대학도 못 가고 자그마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궤도에서 다시 만난 둘은, 최기동 학급의 문제아 민주섭의 누나이자 마음이 넓은 민주란을 만나게 되며, 민주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운명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게 된다. 그 속에서 민주섭은 공부를 하겠다고 하고, 최기동은 하지 말라고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생각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편 10장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이 '덕을 숭상하는 것과 의혹을 판별하는 법'을 물었다. 그에 공자는 제자에게 이런 말로 답한다.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誠不以富 亦祇以異

주충신 사의 숭덕야. 애지욕기생 오지욕기사 기욕기생 우욕기사 시혹야. 성불이부 역지이이

 

 그 뜻은, '충성, 공평, 정성과 믿음을 주체로 삼고 의로움으로 옮기면 그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때는 죽기를 바란다면 살기를 바라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니 그런 것을 미혹이라 한다. 진실로 부유하지 못하면서 이상함만을 취한다.'이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이야기냐면, 여기서 나온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최기동, 박영준, 민주란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 덕분에 위기를 넘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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