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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반의 영화리뷰

잠 (Sleep, 2023) 비(非)과학과 과학의 경계면에서

by notail86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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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 어느 날, 옆에 잠든 남편 ‘현수’가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현수’.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는 잠들면 가족들을 해칠까 두려움을 느끼고‘수진’은 매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치료도 받아보지만 ‘현수’의 수면 중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위험해져가고‘수진’은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갖은 노력을 다해보는데…
평점
6.7 (2023.09.06 개봉)
감독
유재선
출연
정유미, 이선균, 김금순, 최아린, 김준, 이동찬, 김국희, 이경진, 윤경호, 박현정, 김남우

몽유병(夢遊病, sleepwalking::somnambulism)의 영화 속 특징

 작 중 오현수가 앓고 있는 몽유병은 '램수면 행동장애'의 일종으로, 신경세포가 화학적 불균형 상태인 경우 나타나는 의외로 흔한 증상이라고 수면클리닉 의사가 말해준다. 대표적 증상으로 피가 나도록 몸을 긁거나, 음식을 먹거나, 갑자기 뛰어내리는 등의 증상이 발현된다고 알려주며, 집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라고 조언을 한다.

 사고 예방을 위해 모서리는 쿠션을 붙이고, 날붙이 류는 숨기고, 창문은 철창으로 막은 뒤, 좋은 수면을 위해 자기 전 수행 지침을 만들어 수행하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는 것이라고 하며, 뇌전증 치료제 '트아미젠'(알프라이정, 0.5mg)을 꼭 먹고 자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처방의 효과가 미미했고, 결국 직접 조사해 찾아낸 '이미크로펨'이란 약으로 변경하고, 과학적으로 몽유병에서 해방되게 된다.

편집증(偏執症, paranoia)의 영화 속 특징

 후추(포메라니안)의 죽음으로 격발 된 트라우마와 산후 우울증,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발생하게 된 정수진의 편집증은 처음에는 남편의 몽유병 예후를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몽유병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편이 후추에게 한 것처럼 자식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이후 주변이 느리게 인식되는 인식 저하 현상과 함께 불면증도 생기며, 부부는 눈치챌 사이도 없이 수진의 심리상태는 정신 이상 증세의 상호작용으로 점점 악화된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몸조리 중인 수진에게 어머니가 '의학적으로 치료 안되면, 신적으로 치료받아야 돼'라 말하며 추천한 무당 '해궁 할매'는 결국 부부의 집에 찾아오게 되고,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귀신은 자는 사람한테 잘 붙어, 잠잘 때 영성이 약해지거든.

그 틈을 타서 몸에 들어가는 거야 야비하게.

 그리곤 현수의 정수리를 보며 수진에게 남자 둘을 데리고 산다고 말을 한다. (애기는 딸)

 어떤 존재가 신랑한테 붙었는데 데리고 온 것은 수진이고, '개 짖는 소리 없이, 애기 우는 소리 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 너랑만 단둘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제때 쫓아내지 못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 것이며, 빙의굿을 하려면 이름을 알아야 되고, 그래야 쫒을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이쁘장한 게 남자 많이 울게 생겼다'는 이 상황만 아니라면 최대의 칭찬을 들은 정유미 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후 몽유병이 호전되지 않는 남편을 보며 하루하루 편집증이 커지던 어느 날, 남편의 등쌀에 설핏 잠이 들었던 수진은 딸이 잘못되는 꿈을 꾸게 되고, 놀라서 깨어나 급하게 딸을 찾지만 딸의 침대에는 딸이 없어진 상태. 잠들기 전 남편이 끓이던 곰솥을 살피던 수진은 결국 남편을 남편이 아닌 딸에게 해를 끼치려는 존재로 인식해 공격하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빙의(憑依, possession)의 영화 속 특징

 현수는 수진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수면클리닉에 재차 방문하여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는 수진을 데리러 정신병원으로 향하는데 이미 수진은 전날 퇴원 한 상태였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딸을 장모님에게 맡기고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아랫집의 현관문 틈 사이로 아랫집 아들의 무표정한 시선을 뒤로한 채 소음이 들리는 집으로 들어갔더니, 불이 꺼진 집은 온통 부적 투성이었다.

 수진은 부부가 겪은 모든 일들. 즉, 현수가 '누가 들어왔어'라고 말을 한 시점에서 역산하여, 부부를 괴롭히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피가 나도록 긁는 행위, 기력을 되찾기 위해 날음식을 먹는 행위, 개가 짖는 소리에 창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행위, 결국 개를 죽여 생전에는 하지 못한 원한을 갚는 행위, 이 모든 것으로 부부를 괴롭히는 행위들이, 모두 남편 현수가 한 것이 아닌 귀신이 한 행동이라는 것을 무당이 말했던 빙의(작중에는 귀접이라고 한다) 증상의 발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그 대상을 쫓아내 남편을 되찾고 나아가 딸의 안전까지 되찾기 위해 남편에게 빙의해 있는 귀신을 협박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숙고

 '잠'이라는 설정에 맞게 수진의 편집증을 마치 잠과의 유사성을 가진 불면증으로 인한 증상으로 보이도록 노력한 부분이 보였다. 어쩌면 일상에서 지나가듯 넘겼을 일들이 스노우볼이 되어 결국 커다란 재앙이 되어 돌아오는 부분을 잘 묘사했다. 서사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주인공을 바보로 만드는 장면들이 몇몇 보여 답답함을 유발했지만, 사실 관성적으로 사는 우리들도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얼굴로 먹고사는 현수는 피가 나도록 얼굴을 긁었지만 촬영 일정을 지키기 위해 병원이 아닌 출근을 선택하고, 그런 남편에게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던지고 만삭의 몸으로 남편에 대한 걱정을 안고 남편처럼 출근을 선택한 수진을 보며, 지금 보고 있는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건데라고 생각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언젠가 그랬던 경험이 분명히 있다.

 부부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라는 가훈을 새기고 그 가훈을 지키고자 하지만, 결국 삶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한 셈이다. 뒤돌아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감독은 비과학의 영역인 무속의 편일까 과학의 편일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서스펜스'이다. 이 골조를 가지고 가려면 현상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되면 안 된다. 완벽하게 설명된다면, '고스트 버스터즈'를 불렀겠지.

 따라서 '이야기의 토대는 무속적으로 하되,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려 한 노력이 보이는 영화이다.'라고 나름 정의할 수 있겠다. 또 결말은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사실 부부의 정신 질환이 완벽히 치료되어 마무리된 부분은 없다. 무당의 경고를 되새겨본다면 부정적 결말의 수가 더 많다고 느껴, 결국 감독은 비과학의 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니면 내가 비과학의 편이 되고 싶던지.

 끝으로 유재선 감독님의 첫 작품에 플롯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공개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을 보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 잡담

 배우 이선균 씨의 스캔들로 인해 더 큰 빛을 보지 못한 영화이지만, 봉준호 감독님의 콜아웃으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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